2021년 신축년

55. 비오는 금요일 밤엔 술 잔 기울이기

저는시간여행자입니다. 2021. 3. 13. 00:00

술을 좋아하진 않지만 술을 잘 마실 줄 안다.

주말의 시작인 금요일인데 비도 오는 날, 저녁에 남편과 술 한잔 기울일까 싶어 올리브 오일과 새우로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딸에겐 해주고 나는 감바스로 술안주를 만들었다. 처음 해보는 조합인데 괜찮다. 파스타 면을 삶아 넣어서 아이에겐 파스타로 내어주고 나머지 새우와 마늘 자체로 감바스가 되어버린다. 점심을 좀 과식했더니 저녁식사하기는 부담스러워 감바스로 저녁을 떼울 참이였다. 예정된 시간에 남편이 올 시간이 지나서 전화하니 회사동료와 함께 술 한 잔 한다고 해서 이런 날 술 마시면 어떡하냐고 화냈다. 진주 사람이라면 내가 화 내는 이 상황을 이해할 것이다.

할 수 없이 나 혼자 복분자주를 마시면서 먹고 아이는 파스타를 먹는다. 아이가 이젠 다 크다보니 술 한 잔 이해 할 수 있어 편하긴 하다. 아이의 첫 술은 꼭 우리 부부와 함께 해야 한다고 아이에게 신신당부를 해도 아이는 자신이 술을 마시면 어찌될 지 자신 없어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다고 우리 부부랑 술 마시기 싫다고 한다. 그럼 우리 부부는 " 야, 그래도 네 술 주량도 모르는데 친구들과 처음 술 마시면 널 우습게 볼 지도 모르니 안 돼. 처음 술 마실 때 술 버릇이 평생가니 부모한테 주도를 배워야 해."라고 말 하지만 싫다고 한다. 친구들에게도 술 취한 모습 보이기 싫다한다.

어찌 저리 울 부부랑 생각하는게 비슷한지. 울 부부를 닮았다면 주량이 쎄긴 할텐데.....

사실 난 술을 좋아하진 않는다. 그래서 우리 부부끼리는 술을 즐겨마시진 않는다. 마셔도 남편만 마시고. 그런데 부부 사이에 술은 술이 아닌 술 자리로 인해 오가는 대화가 필요하다는걸 40대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그것도 성당 신부님을 통해서.
신부님이 남편과 술을 즐겨 마시냐는 물음에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니 "그럼 부부간의 대화는 언제해요? " 라는 신부님의 말씀에 망치로 한 대 맞은 충격이었다.
'아..... 그러네'
사실 아이 키우느라 제대로 대화다운 대화를 하지 못했었다.



아이와의 단둘이 한 식사가 끝날무렵 이미 술 한 잔 기울인 채 귀가한 남편에게 새우 한 마리와 크로와상을 술안주로 복분자주를 권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남편은 10년의 직장생활이 남은 지금의 시점에서 47명의 팀원 중 연령으로는 5번째로 나이 많은 위치에서 갖는 고민이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 그런 느낌이 있었지만 올해엔 자주 얘길 한다. 한참 왕성하게 일하는 40대가 끝나고 50대가 되어서는 위치나 일의 효율성 면에서는 예전과 다른 것이다. 수십년 일한 남편이 안쓰럽다. 재밌던 회사일이 재미가 없다는 남편에겐 아직도 퇴직까지 남은 10년이 짧기도 하겠지만 하루하루 살아가야하는 직장인의 삶으로서는 긴 세월 아닌가.

아이도 커서 크게 신경쓸 일이 적어진만큼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이 세심해진다. 수십년 가족을 위해 한결같이 한 길로 일만하는 남편을 이제는 내가 남편을 위해 함께 발맞춤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이 들어도 여전히 현실에서는 술 잔을 기울이면서 '다른 사람한테도 그렇기 말하지 마라' ' 좀 더 솔직하게 말하라' 등 서로 훈수두기에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