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일어나 전날 산 소보로 크로와상빵에 초 하나 꽂아 불을 켜고 남편과 함께 아이 방에 들어갔다. 아직도 이불 속에 있는 아이를 향해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고등학생 아들 한 명을 둔 친한 언니로부터 아이 생일이되면 남편이 출근하기 전 이른 아침에 두 부부가 전날 준비한 생일케익으로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한 아들에게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이번에 나도 한 번 해봤다.
내 생각은 조용히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면서 들어가는 거였는데 미처 생각을 세세하게 말하지 않아서 남편은 "도경아~~생일축하 빵 준비했다~~" 말하며 아이방에 들어가는데 나는 급히 "그게 아니고 그냥 축하송 부르면서 들어가는 거야"라고 남편 말을 막고 남편이 든 빵 접시에 내 두 손을 더 보태어 잡고 생일축하 노래를 선창했다. 아이는 비몽사몽이라 누운 채 노래를 듣고 상채를 조금만 세워 촛불을 훅 끈다.
식사를 준비하면서 철학자 강신주님의 강의를 들었다. 사랑한다. 사랑 애(愛). 이 말 속엔 '아낀다'라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우리는 좋아하는 물건이 있으면 아끼게 된다. 때로는 신주단지처럼 모시기도 한다. 내가 샀던 만년필도 기스날까봐 따로 파우치에 넣고 다니는 것처럼. 그는 사랑하는 사람도 아끼라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아끼게 되면 내가 움직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데 순간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지난 몇 년간의 내 모습이 영화 필름처럼 스캔되었다. 교육이란 이름으로 아이에게 시키고, 아이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언제까지 안하는지 두고보자는 심보로 지켜볼 때도 많았다. 내 몸이 아프고 힘들다고 남편에게 말해서 간단하게 혹은 외식으로 때로는 남편이 대신 해줄 때도 있었지만 사실 귀찮아서 하기 싫은 속내일때도 많았다. 세상만사 귀찮았다. 날 사랑해주지 않은 것같은 아이에게도 신경쓰기 싫었고, 날 이해해주지 않는 남편에게도 신경쓰기 싫었다. 내가 이렇게 했는데 내 맘 몰라준다고, 이렇게 해주면 좋겠는데 왜 안해주냐고. 삐지고 속상하고 화나고. 왜 이렇게 악순환만 되는지 이유와 방법을 찾지 못한채 나는 나에게만 더 집중하는 시간을 보냈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다.
이 티스토리에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내 일상을 뒤돌아보고 글로 남기는 과정을 두 달 넘게 하다보니 마음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글쓰기를 통해 상황을 객관화 하고 나를 좀 더 객관화, 이런걸 타자화라고 부르는 건가? 암튼 내 자신에게 변화가 있는 것을 느낀다. 책을 읽어도, 영화를 보아도 가벼이 지나쳐 지지가 않는다.
그렇기에 며칠 전 오디오클립을 통해 들었던 <어린이라는 세계>와 오전에 들었던 강신주님의 상대방을 진정 사랑하는 방법 인강이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내가 남편을 아이를 꽤 오랫동안 제대로 아끼지 못했기에, 잘못된 방법으로 아꼈기에 도돌이표였다는 깨달음을, 잠자는 숲속의 미녀처럼 깨어난 듯했다.
내가 만들고 있는 국과 밥이, 그릇을 씻는 설거지가 분명 어제도 했고 그제도 했던 행위인데 적어도 오늘만큼은 즐거웠다. 아~이제야 철이 드는 건가.
오후엔 윷놀이도 하고, 윷놀이판에서 모아진 판돈으로 남편과 아이는 베스킨 라빈스에 가서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케익을 사와 다시 정식으로 촛불에 불을 켰다. 아이스크림을 바라보며 미소짓는 아이의 얼굴도 편안해 보였다.
생일은 아이인데 선물은 내가 받은 기분이다.
'너의 마지막 10대를 장식할 생일을 축하해~~'
"자기야, 내가 자기를 아끼지 않아서 시키는 거 절대 아니야~~ 휴지 좀 갖다 줄래?"